"독서토론에 목숨 건다" 그래서 우린 '思·考·뭉·치' 부산 예문여고 독서클럽
'단순한 책 읽기에서 벗어나자.' 가정이나 학교에서 독서교육이 꾸준하게 관심을 끌고 있다. 독서교육은 주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대상으로 거론되지만 실제로 깊이있는 독서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기는 뚜렷한 자기 사고와 주장이 형성되는 고교 시절이다. 부산에는 학생들의 독서교육에 열심인 고교가 있다. 바로 예문여고다. 지난해 부산시교육청의 독서교육지원시스템 우수활동 은상, 독서능력경진대회 은상을 받은 예문여고의 독서토론 동아리, '思考뭉치' 학생들을 만나 올바른 독서토론법과 그 효과를 들어봤다.
·독서토론, 우린 이렇게 한다
'思考뭉치' 학생들은 매월 첫째 주 토요일 특별활동 시간과 셋째 주 토요일 학교에서 정한 독서시간, 매주 수요일 7교시 상담시간과 개인적인 시간들을 쪼개 한 달에 적어도 책 두 권씩을 읽는다. 동아리에서 토론에 붙일 책들은 특별활동 시간 전에 모두 읽고, 간략한 감상문을 작성한다. 지금까지 토론에서 다뤘던 책은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유홍준의 '화인열전 1,2', 안도현의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헬레나 노르베지의 '오래된 미래'… 등 장르와 국적, 시대를 넘나드는 것들이다. 책을 정하는 것은 주로 지도교사의 몫이다. 하지만 교과 관련성이나 논술 출제 가능성, 학생들의 관심도 등을 고려해 교사가 학생들과 의논해 최종 낙점한다.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이 나눠 읽을 수 있도록 감상문의 복사본을 준비하고, 두 세 명이 대표로 감상을 발표한다. 독후 감상문이라는 것이 주관적이어서 항상 비슷할 순 없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논쟁거리가 될 만한 상반된 주장을 끄집어내고, 토론의 주요 논제를 정한다. 학생들은 주제에 맞게 각자의 입장을 결정하고, 팀을 구성해 작전회의에 들어간다. 회의시간은 20여분 정도 주어지는데, 주장을 뒷받침해 줄 강력한 근거들을 찾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할 학생과 다시 면밀하게 책을 분석할 학생, 대표 발언자 등을 나누고 각자 토론 개요서를 작성한다. 이같은 2∼3일 가량의 준비가 실제 토론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토론 개요서는 논제와 나의 주장, 근거가 되는 사실이나 생각, 예상되는 반론, 반론에 대한 대책, 추가 주장 등을 미리 적어 두는 것으로, 토론에서는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과정이다.
다시 모인 학생들은 진지하게 '갑론을박'을 펼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주장과 근거를 들고, 상대가 공감할 수 있는 설득력 있고 논리정연한 말하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상대의 논리가 옳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명쾌한 근거와 지적이 필요하다. 또 균형감 있게 토론을 진행하는 사회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팽팽하게 대립되는 주장이라 할 지라도 분명히 인정할 부분은 수용하는 자세도 학생들에게 요구된다. 대립됐던 주장이 어느 정도 일관된 내용으로 걸러지면, 사회자가 마무리 정리를 하고, 지도교사가 전체적인 강평을 하고 끝낸다.
동아리 지도교사 곽의숙 교사는 "처음에는 토론이라는 형식을 부담스러워하고, 말하기를 꺼려하던 학생들도 6하원칙에 따라 내 주장과 이유를 밝히는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사고의 깊이를 키워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동아리 학생들은 또 독서토론 외에 연 2회 정도 교내 독서능력경시대회를 열어 그동안 다뤘던 책 내용을 문제로 풀어보고,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주장 발표대회에 참여하거나 간단한 형식의 독서토론회를 직접 개최하기도 한다. 부산지역 고교 독서토론 동아리 대항 독서토론대회에 참가하고 작가와의 만남, 문학관 탐방 등의 체험활동을 하는 것도 자신감과 재미를 더해준다.
·독서토론, 우리는 이래서 좋다
"독서토론을 단순히 책을 읽고 자신의 감상을 여러 사람과 나누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면, 그건 정말 모르는 소리에요." 예문여고 곽의숙 교사의 말이다. 독서토론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서가 말하기와 듣기로 이어지게 하는 길이며, 적절한 쓰기로 이어져 논술의 디딤돌이 된다고 한다. 곽의숙 교사는 또 "학생들에게는 독서와 자료수집, 생각하기와 글쓰기, 말하기를 동시에 진행하고 참여하는 활동이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독서토론은 고교 과정에서 필수적인 학습"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3학년 학생들도 그럴듯한 말을 전했다. 윤민혜양은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고 독후감도 꽤 써 봤는데 토론은 조금 달랐다"며 "생각을 말로 이끌어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이수정양도 "학교에선 대학입시 위주의 공부만 하게 되고 스트레스도 받는데 책을 꾸준히 읽은 뒤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친구들과 토론하는 것은 일종의 탈출구와도 같다"며 "즐겁게 토론하다 보니 이젠 논술로 글쓰기도 두렵지 않다"고 밝혔다. 박하원양은 "그동안 책을 읽으면 무조건 작가의 입장, 주인공의 편에서 받아들였는데 다른 친구들의 생각들과 주장을 들으면서 책을 대하는 시각이나 관점이 넓어지는 것 같다"면서 "내 생각이 무엇인지도 보다 확실해진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 수시모집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심층면접과 논술에서도 독서토론의 효과가 발휘된다. 예문여고는 지난해 독서토론 동아리 출신 3명의 학생이 각각 서울대와 연세대 수시·정시 모집을 통해 합격했다. 2008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에서 인문계열에 합격한 심재연(19)양은 "동아리 활동 덕분에 심층면접에서 교수님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의외로 수월했다"고 밝혔다. 주로 물으시는 것이 '자네 생각은 뭔가, 생각을 말해보게' 식이었는데 동아리에서 하던 것처럼 또박또박 자신의 견해와 근거를 중요한 순서대로 말했더니 살짝 웃어주시더란다. 심양은 요즘도 책을 읽으면서 주제가 될 만한 부분이나 자신의 생각과 다른 부분, 작가는 왜 이렇게 썼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을 체크해 둔다고 한다. 독서토론이 주는 '생각하면서 책을 읽는' 심화학습(?)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김경희기자 edu@busanilbo.com
■ '思考뭉치'가 뽑았어요(독서토론에 좋은 책)
- 경제학 콘서트, 팀 하포드
- 과학 콘서트, 정재승
- 화인열전 1·2, 유홍준
- 강의, 신영복
-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 홀로 앉아 금을 타고, 이지양
- 파리대왕, 윌리엄 골딩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