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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승 훈

경기 광동고등학교 교사

http://blog.naver.com/wintertree91

 
1. 글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방법 지식을 알려주는 글쓰기 지도 방식은 학생들이 잘 알아듣지 못한다. 가르치는 사람이 설명을 잘해서 배울 때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렇게 배우고 나서 글을 잘 쓰지 못할 때가 많다. 글쓰기란 글쓰기 방법을 지식으로 익히고 바로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몸으로 느낌을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예에서 발차기와 같이 어떤 몸짓을 배울 때와 같아서 설명만으로는 어렵다. 글쓰기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몇 차례 얻으며 쓰는 법을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그것은 잘된 글을 보는 데서 시작한다. 이때 느낌을 받는 일이 일어나려면 그 글이 반드시 학습자가 크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제일 좋은 경우는 또래 학생이 쓴 글에서 잘된 글을 찾아 자기 모범으로 삼는 일이다. 세대마다 쓰는 문장과 어휘의 경향이 다르기에 그렇다. 어른 전문가가 쓴 좋은 글이 글쓰기를

익히는 미성년 학습자에게는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2. 논술 쓰기를 처음에 가르치면 누구나 고민한다. 어떤 수준으로 어떤 글을 쓰게 해야 할까.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학생에게 곧바로 논술을 쓰게 하면 학생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려워해서 저만치 물러서기 쉽다. 처음 글쓰기를 익힐 때는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쓰는 생활글쓰기가 좋다. 이오덕 선생과 윤구병 선생으로 대표되는 생활글쓰기는 소박한 방법론으로 무척 뛰어난 성과를 이루어내었다. 방법이 소박하고 복잡하지 않아서 글쓰기를 처음 하는 학생이 주눅들지 않고 글쓰기를 처음 가르치는 교사에게도 두려움을 덜어주어서 좋다. 이오덕,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보리, 2004. 이 책을 살펴보시라.

 
3. 동기-줄거리-감상으로 하는 독후감 양식은 학교 글쓰기 지도에서 성공하기가 어렵다. 학생들이 동기를 쓸 때 ‘숙제로 쓴다, 안 쓰기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시작하고 그 다음에 줄거리를 길게 쓰는데 이 내용은 거개가 다 비슷하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감상이 이어지는데, 이 감상 부분이라도 글쓴 사람의 느낌과 생각이 살아나면 좋겠지만, 앞에서부터 이어온 글의 흐름이 너무 식상했기에 마지막에 쓰는 감상마저도 ‘읽고 나니 감동 깊었다’는 식으로 전혀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구절도 채워지기 십상이다. 재미없게 글이 시작되고, 뻔한 줄거리가 길게 이어지고, 느낌 없는 감상이 덧붙여진다.

그렇다고 동기-줄거리-감상의 글쓰기 양식이 아예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 바깥에서 하는 쓰기에서는 의미 있을 수 있다. 학교 바깥에서는 동기가 ‘숙제여서 쓴다’라고 나오지 않고 자기 삶의 문제상황에서 이 책이 어떤 실마리를 주었다고 생생하게 표현되고, 그 생생한 글 첫머리에 이어서 그 문제상황과 관련된 책 내용이 긴장감 있게 정리되고 그 뒤로 문제상황과 문제상황에 어울리는 책 내용 정리에 따른 자기 생각과 고민이 제대로 씌여질 수 있다. 세상에는 여러 글쓰기 방식들이 있는데 각각이 어울리는 맥락에 맞게 놓였을 때 성공하고, 맥락에 맞지 않게 그 쓰기 방식이 쓰일 때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4. 논술은 세상의 여러 문제상황에 대해 자기 생각으로 문제를 짚고 생각한 과정을 조리 있게 글로 표현하는 일이다. 한국의 논술 문제는 문제상황에 대해 기존의 연구자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고뇌한 글을 보기글로 함께 제시하는 특징이 있다. 논술의 원조격이라 불리는 프랑스에서는 논술 문제가 짧지만, 한국의 논술 문제가 보기글로 길어진 까닭은 채점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문제상황에 대해 보기글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어떻게 원인을 짚고 있는지를 파악하라는 주문이 흔히 따르는데, 여기서 정답이 어느 정도 있는 논술 문제가 있게 된다.

 
5. 프랑스식 논술이든 한국식 논술이든 세상의 문제상황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책읽기는 무척 중요하게 자리매김된다. 한국의 중등학교에서 쓰이는 교과서는 지식 생성 과정을 보여주지 않고 지식 생산의 결과를 요약한 책이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매우 많은 지식을 흡수하는 데 교과서는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지식을 생산하는 연습을 하는 데 한국의 교과서는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가 않다. 교과서라는 속성 자체가 그렇다. 교과서에만 학습이 집중되면 고급 지적 능력의 성장이 지체된다. 요약본을 보고 공부한 사람은 단편적인 정보와 개념은 많이 알지 몰라도,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힘은 약하게 된다.

 
6. 게다가 한국에서 교과서는 대체로 무색무취하다. 국정과 검인정이라는 형식으로 국가가 공인하기에 논쟁이 될 만한 사안은 물러서 있고, 나와 있는 결론은 논쟁의 여지가 더 이상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론이란 그전에 널리 사람들이 상식으로 여기던 어떤 통념을 깨고 또 깨면서 발전해온 것이다. 그 이론을 주장하는 단행본 책에서는 기존의 통념과 맞서며 자기 논리를 증명하려는 긴장이 있어서 읽는이의 손에 땀이 나게 하지만, 요약정리본인 교과서에는 그 이론의 생성 과정에서 연구자가 흘린 땀과 갈등과 고민이 빠져 있어서 긴장이 없고 메마른 책읽기가 된다. 게다가 요약정리본인 교과서는 지식이 본래 생성되어온 것이란 점을 잊게 해서 이론을 절대적인 무엇으로 보고 그것을 외우는 학습을 하게 하기가 쉽다. 이래서는 학습자의 자기 생각이 길러지기가 어렵다. 이 책을 공부해서는 학생들이 논쟁적으로 사안을 보기가 어렵다.

 
7. 우리 사회는 학생들에게 호응 받는 책 목록을 만들어 권하는 데 아직은 덜 성숙했다고 판단된다.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책을 학생들에게 권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정한 전공을 익히는 성인 전문가 집단을 교육시킬 때가 아니라면, 그 책 목록을 건네받는 이들이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피는 과정은 중요하다. 학습집단의 다수가 이해하지 못하는 책 목록으로 책읽기 교육을 한다면, 그 교육은 학습자에게 동의를 얻는 정도가 약해져서 학습자 집단의 의욕이 점점 떨어지게 된다. 굉장히 번듯한 책 목록을 학생에게 건네었기에 가르치는 이는 만족스럽지만, 배우는 이는 책읽기 교육을 받으면서 책읽기가 자기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청소년 권장도서의 제1조건: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책인가.

제2조건: 교사가 만나는 지역의 학생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조건은 사실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상식이다. 그런데 잘 실천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첫째로 교사가 학창시절에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이었다는 경험이 함정이 된다. 누구나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청소년 시절에 공부를 잘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준으로 삼아서 책을 고르다 보니, 그 책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주로 잘 읽어내는 책들이 되고 만다.

두 번째로 교사가 성장한 개인적 삶의 처지와 지금 학생들이 살아온 환경이 갖고 다른가에 따라서도 책 목록 선정과 거기에 호응하는 정도가 영향을 받는다. 어렵고 각박한 처지에서 의지를 갖고 세상을 헤쳐온 교사가 물질적 안락 속에서 자라온 학생과 만날 때 느끼는 위화감은 책을 골라서 주는 일에서도 어긋남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좋은 환경에서 사랑 받으며 성장한 교사가 부모의 방치 속에서 함부로 세상과 갈등하며 살아온 학생과 마주했을 때 생기는 만만치 않은 문화가치 충돌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자기 같은 학생이 있고, 자기 같지 않은 학생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학생에게 호응 받는 책을 건네기 어려워진다.

세 번째로 세대 문화가 작용한다. 스무 살 직전의 아이들은 자연과 생태에 대한 내용에 관심 갖는 이가 별로 없다. 자연과 생태에 대한 관심은 지금 우리 문화에서 이십 대 중후반을 통과해야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느 공동체든 문화 성장의 방식들이 있다. 우리 공동체에서 이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가늠할 필요가 있다. 이 일은 가만히 자신의 지난날을 들여다보고 학생들의 책에 대한 반응을 들여다보면 할 수 있다.

네 번째로 지역에 따라 학생들 정서가 다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문화적 동질성이 강한 사회여서 이런 점이 잘 고려되지 않지만, 지역에 따라 학생들 문화가 다르다는 사실을 체험한 교사들은 많을 것이다. 오래된 지역문화의 전통이 있는 곳과, 갑자기 폭발하듯 아파트촌으로 형성된 곳과, 하나둘씩 다른 지역으로 마을사람들이 떠나고 패잔병처럼 남은 사람들이 모인 곳과, 각각의 지역마다 아이들은 적잖게 다른 정서를 형성하게 된다. 어떤 아이들은 가난에 대해 연민하고, 어떤 아이들은 아파하고, 어떤 아이들은 깔본다. 환경에 따라 결정되지는 않지만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고려될 필요가 있다.

8. 같은 책을 읽었다고 해서 모두 다 같은 성취를 얻지는 않는다. ‘흥부전’을 예로 들자, 흥부전의 주제는 무엇인가? 누구는 형제간의 우애라고 대답한다. 또 다른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대답한다. 빈부격차 문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 세 사람은 같은 책을 읽고 다르게 성취를 얻은 것이다. 흥부전은 조선 후기에 크게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다리 부러진 제비를 치료해주었더니 제비가 다음 해 봄에 박씨를 물어와 그 박을 심으니까 나중에 박에서 보물이 쏟아져나왔다는 이야기는 조선 후기 이전에 오래 전부터 전해오던 이야기다. 그런데 왜 조선 후기에 그 이야기가 더 풍성해져서 크게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을까? 이 물음에 대해 탐구하지 않는 흥부전 읽기는 사실 중학교 이상에서 제대로 성취를 이룬 것이라 하기가 어렵다.

 

9. 흥부는 가난하다. 왜 흥부는 가난한가? 교실에서 이렇게 물으면 학생들은 아이가 많아서라고 우스개로 대답해서 다같이 한번 웃는다. 그러면 나는 가난해도 사랑이 꽃필 수 있다는 사실을 흥부가 보여주지,라고 얼른 대답하고 그 웃음을 넘어간다. 그러고 조금 다르게 묻는다. 그 사람은 게을렀는가? 학생들은 어렴풋이 어렸을 때 읽은 기억을 짚어낸다. 그렇지 않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심지어 돈 받고 대신 매맞는 일까지도 한다. 그 당시에는 죄를 지으면 맞는 형벌이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데 흥부는 가난하다. 반면 놀부는 부자다. 인정머리 없는 부자다. 놀부는 직업이 무엇인가? 우리 기억 속에 놀부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일을 했기에 한가한 일상을 보내면서 계속 그는 부자였을까? 놀부는 은행업을 했다. 돈을 꿔주고 이자를 받으니, 돈이 돈을 벌어 바쁘게 살지 않으면서도 점점 더 부자자 된다. 흥부는 몸으로 하는 일을 팔아 돈을 버니 열심히 일해도 늘 가난뱅이 신세다.

10. 조선 후기는 한반도에서 자본주의가 새싹을 돋아난 시기다. 자본주의의 제왕은 금융자본이다. 돈을 축적한 이가 그 돈으로 더 돈을 버는 상황을 맞이해서, 그 시대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어떻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돈 장사하는 사람은 점점 부자가 되는지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근대 체제로 접어들면서 새롭게 맞이한 문명적 문제상황이다. 각 공동체마다 이런 새로운 상황에서 생기는 아픔을 표현한 문화가 있었고, 한반도 문화에서는 흥부전이 그런 것이었다. 본래 한 시대에 크게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는 예술 작품은 대개 그 시대 사람들이 몹시 안타까워하는 어떤 설움과 아픔을 담은 것들이다. ‘춘향전’은 신분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고, ‘홍길동전’에서도 그렇다.

11. 시대적 맥락에서 작품을 이해하는 일은 학생들의 이해를 거시적으로 하게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학생들 눈이 밝아진다. 어떤 일이 있으면 왜 그런지 사연을 따지게 되고 원인을 찾게 해서 머리가 좋게 된다. 그러나 세상을 좀더 잘 볼 줄 안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길에 더 다가서는 것은 아니다. 자칫 세상의 모순을 아는 일은 눈빛을 싸늘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르치는 이라면 세상을 가르칠 때, 그 문제를 풀려고 앞서 산 이들이 어떤 궁리를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부익부빈익빈은 자본주의의 주요한 모순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계속 되었다면 자본주의가 이삼백 년 인류 사회에서 있지 못했을 터이다.

12. 흥부전은 세상 사람들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고 놀면서 돈 장사를 하는 사람은 점점 부유해진다. 그런데 세상이 계속 이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이때까지 살아왔을까? 계속 세상이 흥부전 같았으면 이 세상은 여기까지 오지 않고 이미 폭발해버렸을 것이다. 세상이 폭발하지 않은 데는 여러 사람들이 빈부격차 모순에 대해 대안을 고민하고 실천한 노력이 있다. 그러나 흥부전은 자본주의 모순이 문제로 드러난 초기 상황에서 나온 작품이라 문제의 해결을 환상적인 장면 연출로 처리한다. 실제 사회정책으로 쓰일 만한 방법을 이 작품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흥부전은 아픔을 호소하고, 그것의 해방을 꿈꾸지만, 어떻게 해야 아픔이 가시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해 학생들에게 궁리거리로 제시하고, 논의할 시간을 준 다음, 발표를 들어보는 일이 필요하다.

 
13. 예전에 서강대 논술 시험에서 조세희 선생이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보기글로 쓴 적이 있다. 그 다음에는 이 문제 상황에 대해 대안을 서로 다르게 궁리한 글을 두 편 주고서 시험 보는 사람에게 생각을 어느 쪽 대안이 더 맞게 보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예전에 건국대 논술에서는 법정 스님의 수필과 미국의 생태주의자 스콧 니어링의 글을 보여주었다. 법정의 글과 스콧 니어링의 글은 모두 자본주의 경쟁의 결과로 생기는 빈부격차에 대해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문제들은 보통 그렇다. 문제상황이 무엇이고, 보기글 두세 편에서 각각 어떻게 문제의 원인을 짚고 있는지 정리하고 시험 보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안을 생각하기를 요구한다. 법정 스님은 비움의 정신, 무소유 사상을 대안으로 내세웠고, 스콧 니어링은 서로 경쟁하는 사회 체제를 상생하도록 바꾸는 일을 이야기했다.

 
14. 자본주의는 불평등하다. 그런 불평등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마음의 소리가 있다. 그러면 자본주의의 불평등한 상황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기회균등이 보장될 때다. 중세 사회를 넘어 근대 사회가 자본주의로 이루어질 때, 중세의 신분차별 세습 체제에 대해 근대는 개인의 노력에 따른 성취를 내세웠고 그 이념이 널리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어 우리는 이 시대를 살고 있다. 기회균등을 하게 하는 장치는 무엇이냐고 학생들에게 물으면 여러 생각들이 쏟아진다. 상속 문제, 의무무상교육, 누진세라는 말을 학생들이 하는데, 사실 이런 개념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회 교육과정에 다 나와 있는 내용들이다. 단지 그 개념들을 자기 머리로 생각해서 다른 일에 적용해본 연습이 너무 부족했기에, 새로운 이야기처럼 들릴 따름이다. 이런 논의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바로 논술 공부이다.

 
15. 학생들에게 묻는다 : 자신이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는 경우에는 어떤 경우가 있는가? 사람이 한껏 힘을 다해도 일이 잘 안 되는 어떤 경우인가? 이렇게 흥부전과 관련해서 자기 주변 경험을 섬세하고 꼼꼼하게 살피는 물음을 건네고 대화를 나누어도 좋은 공부가 된다. 선착순으로 달리는 벌을 받을 때 아무리 힘써 달리려 해도 그 의욕의 높고 낮은 정도와 상관없이 앞서갈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열심히 하는데 솜씨가 안 따라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상황, 본래 타고난 정도가 너무 심한 음치라서 음악 시간에 좌절한 체험, 고급 사교육을 받는 집 학생과 학원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학생이 같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 얼굴이 예쁘지 않아서 취업 때 차별받는 여성들의 사례 등등 여러 얘기들이 나온다. 아픔을 나누고, 대안은 논의하다 보면, 그것이 바로 논술 공부가 된다.

 
16. 아직도, 얼마나 많이 책을 읽혔는가를 중요하게 보는 보고서를 가끔 읽는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떤 글을 어떻게 읽었는가를 따지는 일이다. ‘메밀꽃 필 무렵’을 읽고 인간으로서 느끼는 육친에 대한 본능적 애정이라고 주제를 정리한 사례를 종종 보는데, 그런 표현은 청소년들이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이기에 남는 것이 적은 교육이다. ‘홍길동전’을 읽고 작가와 시대 배경을 설명하고 주제를 신분차별의 모순이라고 정리하고 마치면 남는 것이 적은 교육이다. ‘신분차별의 모순’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얼마나 생동감이 떨어지는가.

때때로 어떤 말은 바로 그 말로 가르치면 가르쳐지지 않는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단지 말로만 소리낼 때 느낌이 와닿지 않아 안타깝듯이, 그 말을 소리내기 전에 그 말이 가슴속에 들어와 울리도록 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과정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 교사가 하는 진짜 독서교육이다. 이것은 꼭 국어교육 전공과만 관련되지 않고, 모든 전공을 아울러서 해당하는 이야기다. 어떤 분야의 학문이든 감동이 없겠는가. 기술·가정에는 기술·가정의 감동이 있고, 미술·음악에는 미술·음악의 설렘이 있고, 사회에는 사회의 깨달음이 있고, 영어에는 영어의 문화 체험에서 오는 인식의 충격이 있다.

 
17. 책읽기의 시작은 책을 온전히 읽어내는 데 있다. 책읽기의 중간은 책과 세상을 연관해서 생각하는 데 있다. 책읽기의 끝은 책과 책 읽는 사람을 되돌아보며 사색하는 데 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하는 공부에서 그 공부의 수준과 질은 어떤 물음을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이에게 던지느냐에 따라 결정이 난다. 주제가 무엇인가? 소재가 무엇인가? 이런 물음은 던지지 말아야 한다. 주제가 무엇인지 깨닫도록, 소재가 무엇인지 학습자가 자연스럽게 알도록 하는 물음이 제대로 된 물음이다. 이 물음들은 메마르지 않고 재밌고 웃기고 해학스러울수록 좋다. 홍길동전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은 물음들이 나온다. 홍길동 엄마는 어떻게 홍길동을 임신하게 되었는가? 홍길동의 임신하게 된 그날 춘섬이가 일기를 썼다면? 홍길동은 왜 가출했는가? 홍길동을 죽이려 한 초란이를 법정에 세운다면 어떤 개념을 써서 죄를 가늠해야 하는가?

 
18. 춘향전을 읽었을 때라면 이렇게 할 만하다. 몽룡과 춘향은 만난 지 얼마만에 첫 성관계를 갖는가? 춘향이는 몽룡이를 사랑했을까? 몽룡이는 춘향이를 사랑했을까? 이들은 사랑해서 관계를 맺는 게 아니다. 이 둘은 만난 바로 그 날에 몸 관계를 갖는다. 낮에 그네 타는 춘향을 몽룡이 길 가다 보고 반해서, 그날 저녁에 여자네 집에 몰래 들어간다. 그러다가 여자의 어머니에게 들켜서 누구이고 왜 왔느냐고 물음을 받는다. 낮에 이 집 딸을 보았는데 예뻐서 하룻밤 자러 왔다고 몽룡이 말하는데, 여자네 어머니가 딸의 의사를 묻고 오겠다고 하고 딸의 의사를 묻는데 딸이 좋다고 대답을 한다. 딸의 어머니도 좋다고 하고, 이거 왜 이럴까? 성 개방 풍조가 있던 고려 시대 풍습이 조선까지 내려와서 그랬을까? 이런 작품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보고 파고들어야 그 작품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19. 황순원이 쓴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소나기’를 가지고 물음을 만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좋아한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피부가 하얘서다. 자기 동네에 자기와 비슷하게 사는 까무잡잡한 여자아이들과는 다르게 그 아이는 서울에서 와서 피부가 하얗다. 소나기를 시골소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서울소녀의 관점에서 다시 쓰면 어떨까. 더 나아가 소년의 시점으로 구성되는 그 소설에서 아예 눈에 보이지 않는, 소년 주변에 많았을 시골소녀의 시점에서 쓰면 어떨까.

김유정이 쓴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동백꽃’은 내용이 고약하다. 억센 기질의 여자아이가 소심한 남자아이에게 사랑을 표시했다가 거절당하자 그 남자아이네 닭을 날마다 쥐어팬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가 자기를 골탕먹이니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지만 여자라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계속 놀림 받고, 나중에 여자아이는 동백꽃밭에서 남자아이를 쓰러뜨리게 된다. 이런 줄거리로 된 소설을 읽히면서 우리들은 청소년인 학생들에게 어떤 내용을 가르쳐야 할까?

우리가 다 아는, 흔히 들어온, 교과 수업에서 나오는 특별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 ‘왜 그럴까’ 하는 물음을 던지면, 그 내용은 빛이 나기 시작한다. 뭉크가 그린 몸부림치는 그림 ‘절규’를 그냥 보여주고 지식을 가르치면 그냥 지나가지만, 그 그림처럼 어떤 일을 당했는데 정신이 혼란스러워서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주변 것들이 일그러진 체험이 있으면 얘기해보자고 하면 배움이 달라진다. 과학 시간에 프레온가스가 오존층을 파괴시킨다는 내용을 가르칠 때, 노벨상을 받은 천체물리학자인 칼 세이건이 쓴 ‘에필로그’에 나오는 기업의 후원을 받는 일부 과학자들이 프레온가스를 옹호해서 진실을 밝히는데 어려움을 겪은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면, 현대 과학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20. 사회 교과에서 학생들이 혼히 좋다고 얘기하는 체제가 ‘복지국가’이다. 나이 들고 약한 이들을 국가가 챙겨주고 아픈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아이 낳으면 양육비가 나오고 교육은 시민의 기본권으로 대학까지 무상이고, 북유럽 국가 체제에 대해 나쁘다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학생들이 쉽게 말하는 복지국가를 교사가 듣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 안 된다. 교사는 그 마음 과정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고개를 쉽게 끄덕이지 않는 까닭은 복지국가를 반대해서가 아니다. 학생들이 말하는 복지국가에는 그 나라 사람들이 자기 수입의 60-70%를 공동체 비용으로 낸다는 사회적 분담 의식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어떤 것을 보고 좋다고 할 때,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들이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 묻는 일이 필요하다.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사회적 분담을 하는지, 그 사회에서 동의되는 논리에 대해 이야기가 필요하다.

21. 논술 공부로 책을 권할 때는 세상과 연관지어서 생각거리를 학생이 찾을 만한 책으로 하는 것이 좋다. 교사가 학생에게 어떤 책을 권할 때는 그 책에 대해 교사가 물음을 만들 수 있는지 자신에게 되물어야 한다. 물음을 만들 수 없는 책은, 학생과 그 책을 세상과 인생살이와 연관지어서 교사가 이야기할 수 없을 책은 권하지 않거나 조심스러운 게 좋다. 어렵고 이름난 책을 읽었는가를 따지는 일보다, 그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묻는 일이 더 중요하다.

 
22. 논술 공부는 어떤 특정 과목에서 할 수 있지만, 학습의 일상에서 오고가는 대화와 학습활동으로 이루어지는 게 더 좋다. 평소 공부에서 공부내용을 세상과 연관지어서 생각하고 표현하는 연습이 충분히 되어 있을 때, 그것이 바탕이 되어서 나중에 실제 논술 시험 문제를 풀 때도 글이 알차게 나올 수 있다. 생각 훈련이 부족한 채 단기간에 논술 연습을 해서 시험 답안을 쓰면, 아무리 고급 교육을 받아보아야 뻔한 지식 개념이 요약되어서 나올 뿐이다. 그런 답안은 모두 비슷비슷해서 맛이 떨어진다. 자기 일상의 주변에서 지식 내용과 연관할 수 있는 거리를 찾아 쓴 글이 채점관에게 참신하게 다가선다. 여러 과목 교사가 각각 자기 전공 수업 내용에서 이야기거리를 궁리해서 일상적으로 얘기해주는 것이 지금 학교 현실에서 대안이다.

 
23. 학교 교사들이 자기 교과 수업에서 한 해에 한번만(한번씩/한번이라도) 글쓰는 숙제를 내고서 그 글을 제대로 보아준다면 학생들 글솜씨가 많이 나아지리라 싶다. 대체로 과목마다 수행평가 과제로 보고서 쓰는 숙제를 내주는데, 그 과제를 어떻게 하라는 목표는 제시되지만, 그 성취목표를 어떻게 이루는지 과정에 대해서는 지도가 세심하지 않은 게 보통이다. 내가 국어교육과를 나왔지만, 대학 졸업 때까지 내가 쓴 글을 고쳐받으며 지도 받은 적은 단 두 번뿐이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대학 때도 어떤 책을 읽고 보고서를 써내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지만, 어떻게 보고서를 쓸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학생들은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소설비평을 들추어보며 어떻게 쓰는지 궁리를 했고, 그러다 보니 되는 학생은 글쓰기가 터득되었고 되지 않는 학생은 글쓰기를 대학 졸업 때까지도 어려워했다. 목표는 제시하지만 과정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한동안 한국 교육의 특징이었다.

 
24. 글쓰기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려면, 자기가 쓴 글을 고쳐받는 지도가 필요하다. 한 학기에 두 번 보고서 내는 숙제를 학생에게 내는 교사가 있다면, 한 학기에 숙제를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이고, 그 대신에 그 한 번 내는 글을 교사가 읽고 학생과 대화를 하고 돌려주어서 다시 고쳐 써 오게 하면 좋다. 그리고 학생이 과제 내는 마감날에 다른 친구가 낸 글을 보고, 아 하고 탄식할 때가 있다. 저 친구처럼 하면 더 잘할 수 있는데 싶은 것이다. 이럴 때 교사가 마감날이 되었으니까 이제 끝이야라고 얘기하면 그 교사는 교육을 이해하는 데 서투른 이다.

누군가에게 자기 단점을 지적받고 그것을 인정하고 보완할 때 발전이 있기에, 자신에 대한 비판적 비평은 배움의 과정에서 꼭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칭찬을 좋아하고 비판을 불편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교사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학생이 알아서 자신의 단점을 느끼고 그 개선책을 찾고, 더구나 간절히 그 개선을 바라고 있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때는 다시 만나기 어려운 교육적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 느낌은 거의 신내림과도 같다. 이런 순간을 외면하면 안 된다. 마감날까지 과제를 내라고 말한 다음에, 교사가 평가점수를 행정적으로 넘기는 마지막 날 전까지 학생에게 자기 글을 고쳐올 수 있게 하면, 학생들의 성장이 몹시 빨라진다.

 
25. 학생이 많아서 교사가 감히 학생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엄두를 못 낼 때가 많다. 이럴 때는 긴 글을 쓰게 하는 일은 일 년에 한두 번만 하고, 그 한두 번 쓰는 글을 교사가 읽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과 긴 일정을 두고 얘기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조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한 교사가 책임지는 글의 양은 한 해에 한 학생에게 고작 글 한두 편이지만, 그 학생이 만나는 교사는 한 해에 아홉에서 열 사람쯤 되기에, 글쓰기 학습량은 적은 게 아니게 된다. 아홉이나 열이 되는 교사 가운데 절반만 함께해도 학생들은 자기 글에 대해 소중한 지도를 학교에서 받을 수 있다. 글을 볼 때는 꼼꼼하게 보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교사가 녹초가 되어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글 한 편을 아주 꼼꼼히 보아서 틀린 글자까지 다 빨간줄로 표시해놓으면, 학생은 오히려 교사의 정성 때문에 기가 죽어버리기 십상이다. 글 한 편에서 세 군데만 지적해서 글을 고쳐오게 하는 게 좋다. 빨간줄 표시는 단 세 군데만 하는 것을 나는 원칙으로 삼는다.

 
26. 어떤 책을 읽힐까? 여기에는 전공서적에 대해 이해하고 학습자의 기질과 흥미를 아는 일이 필요하다. 어떻게 학생들 손에 책이 들려 있게 할까? 여기에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재주가 필요하다. 책을 손에 들게 한 뒤에, 어떻게 그 책에 대해 대화할까? 여기에는 얘깃거리가 되는 물음을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대화한 다음에 어떻게 글을 잘 쓰도록 가르칠까? 사람이 글쓰기를 어떻게 익히게 되는지 과정을 알고 챙겨주는 일이 필요하다.

 
27. 시중에 있는 글쓰기 지도서에는 종종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서론 쓰는 방법 몇 가지, 본론 쓰는 방법 몇 가지, 결론 쓰는 방법 몇 가지, 이렇게 가르치면 학생들은 그 내용이 머릿속에서 엉켜서 잔뜩 주눅들기 쉽고 글을 잘 쓰게 되지는 못하기 십상이다. 자기 마음에 드는 잘된 글을 구조 분석하고, 그 글처럼 흉내내서 글을 써보는 방법이 쉽다. 교사가 할 일은 그 주제에 대해 학생이 따라해볼 만한 글을 여러 편 마련하고, 학생이 자기 기질에 맞는 글을 찾도록 안내하는 일이다. 다음은 다른 친구가 쓴 글을 가지고 따져보는 학습물음이다.

 
1. 먼저 그냥 읽자.    -선생님이 나누어준 독후감들을 쭉 읽어보자

 (1) 자기 마음에 드는 독후감을 한 편 골라보자

      -누가 쓴 글?  (                   )

      -어떤 책을 읽고?  책이름:(                    )  출판사:(              )

      -독후감 제목은? (                                            )

 (2) 왜 이 독후감을 고르게 되었는지? 이유는?

2. 글을 다 읽고서 무슨 생각·느낌이 들었나? 글을 읽으면서 그때그때 든 생각은 무엇인가?

3. 글쓴이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까? 글쓴이의 가슴속을 그림 한 장으로 표현해보자.

4. 독후감에서 인상에 남는 부분을 옮겨 적는다. ‘어떤 느낌’이 들었길래 이 부분이 인상에 남았을까? 이유도 함께 적어보자.

5. 글쓴이에게 친구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6. 글 구조를 한번 살펴보자. 어떤 식으로 글이 이루어져있는가? 글쓴이가 글을 어떤 식으로 썼는지 따져보자.

7. 이 독후감과 관련된 자기 경험을 떠올려서, 길게 이야기를 풀어보자.